추석 연휴를 사흘 앞둔 날, 우원식 국회의장의 발걸음은 남달랐다. 전통시장도, 명절 선물 전달식도 아닌, 청주의 한 작은 집을 향했다. 그곳엔 5년 전 산업재해로 두 팔을 잃은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 오기나(37) 씨가 있었다.

우 의장의 방문은 한겨레 신문 기사 한 장에서 시작됐다. 2019년 12월, 태양광 패널 설치 작업 중 2만2,900V 고압 전류에 감전돼 양팔을 잃은 오기나 씨의 이야기. 회사가 단돈 50여만 원의 전기 차단 비용을 아끼려다 일어난 참혹한 산재였다.

"기사를 보고 가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을지로위원회 초대 대표로서 노숙인, 쪽방촌 주민과 함께 걸어온 우 의장에게 오기나 씨의 아픔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국회의장이라는 무거운 직함보다, 한 사람의 고통 앞에 서는 것이 먼저였다.

오기나 씨는 지금도 화상 후유증으로 여러 치료를 받고 있다. 일할 수 없는 몸이 된 그에게 치료비는 감당하기 힘든 부담이다. 가족의 생계도 막막하다. 법원이 2억1천만 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지만, 회사는 단 한 푼도 배상하지 않고 있다.

더 가슴 아픈 건 오기나 씨가 언젠가 이 땅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현재 가진 비자가 치료 중에만 연장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두 팔을 잃고도, 제대로 된 보상 한 번 받지 못한 채 추방당할 위기에 놓여 있다.

우 의장은 오기나 씨의 손을 잡았다. 아니, 잡을 수 없는 손 대신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말보다 온기가 먼저 전해졌다.

"혼자가 아닙니다. 제가, 우리가 함께하겠습니다."

명절이면 정치인들의 민심 행보가 이어진다. 시장을 찾고, 선물을 나눠주고, 사진을 찍는다. 그것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우원식 의장의 선택은 달랐다. 카메라가 없는 곳, 표가 되지 않는 곳, 그저 한 사람의 절박한 아픔이 있는 곳을 찾았다.

을지로 쪽방촌에서 시작된 그의 정치 철학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국회의장이 되어도, 권력의 중심에 서 있어도, 그의 시선은 여전히 가장 낮은 곳을 향하고 있다.

추석은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다. 하지만 오기나 씨에게 이번 추석은 또 한 번의 고독일 수 있다. 그런 그에게 우 의장의 방문은 작은 위로이자,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우리 사회가 당신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함께 해결해 나가겠습니다."

정치의 온도는 누구를 만나느냐로 결정된다. 우원식 의장은 오늘도 증명했다. 진짜 정치는 권력의 언저리가 아닌, 고통의 현장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추석 연휴를 앞둔 그의 행보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누구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아픔 곁에 서 있는가.

류홍근 기자